2008년 05월 21일
지독한 여름 속에서, 근황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기온이 대략 40도 정도까지 올라갔었다. 4월 달의 그 “82년만의 더위”에 비하면 훨씬 견딜만 했고, 아직 진정한 여름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겨우 이 정도에 우는 소리를 해선 안 되지만, 그래도 좀 울고 싶다… …, 아놔, 앞으로 장보러 다닐 일이 걱정이다. 버스 두 번 타고 한 시간 반 걸려 마켓에 도착해서 장 보면, 등에 잔뜩 지고 양 손에 짐 들고 버스 두 번 타고 다시 한 시간 반 걸려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 버스 한 대 타려면 작열하는 태양과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온도 속에서 몇 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좀 기절해주고 싶다. 워낙 여름에 몸이 많이 약해지는지라 안 먹고 살겠다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다. T-T;;
여름에는 항상 몸이 힘들다. 여름과 겨울은 심장이 안 좋은 사람에게 위험한 계절이라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코피가 났다. 입술이 헐기 시작했을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는데, 시원할 때 심리학 교과서를 읽어두려고 새벽 늦게 잤더니 또 이 꼴이다. 그래도 낮에 많이 자둬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
여름에는 자주 이렇게 코피가 난다. 남들은 “코피 뭐 그 까이 꺼”일지 모르지만, 난 한 번 코피가 나면 짧게는 10분, 30분이면 멎지만, 길게는 3시간 가까이, 그것도 ‘줄줄’이 아니라 ‘콸콸’ 쏟아댄다. 코피가 나고 5분쯤 있으려니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띵하고 아프고 어지러웠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 이것저것 해주셔서 1시간 정도 만에 멎긴 했는데, 하루 종일 몸이 안 좋았다. 낮에도 계속 누워서 쉬어줬는데도 이렇다. 전에는 코피 좀 난다고 이렇게 하루 종일 아프거나 하진 않았는데, 확실히 지난 달의 심장발작인지 뭔지 이후로 체력이 떨어졌달지 몸이 약해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날이 덥긴 더웠나 보다. 지난 번에 밤에 늦게 자거나 끼니를 자꾸 거른다고 30살 전에 죽고 싶어서 그러냐고;; 화를 내셨던 선생님이, 낮엔 더워서 새벽에 공부한다는 말에는 “이해해. 하긴 날이 좀 더워야지”라고 하셨다;; 솔직히 새벽에 자서 코피까지 나는 바람에 된통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 (<<알면 일찍 자던가)
그래도 이번 주나 다음 주에는 A군이 선물한 에어컨이 도착한다! 만세! 이 거지 같은 20년 묵은 아파트도 에어컨만 있으면 당장 집세 저렴하고 방 넓고 살기 좋은 근사한 곳으로 변할 거다. 에어컨이 도착하면 지금까지 미뤄둔 만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_+
2.
언제나 학기 초에 설레이고 초조한 마음에 수업을 잔뜩 등록했다가 중간 고사가 지나고 날 때쯤이면 대거 드랍해버린다… …,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도 자주 빠지고 과제도 잘 안 해가게 된다. 진이 빠졌달까, 학기 초에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재가 돼버린 느낌이랄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바닥이 드러난 느낌이 돼서, 이젠 도저히 무리야-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어째 이번 학기가 훨씬 더 심하다. 학기 중간까지만 해도 내 칼리지 역사상 나름 최고의 점수를 기록했던 것 같은데… …,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다. 정말이지 이번 학기에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뭐 지나간 일을 아쉬워해봤자 별 수 없다.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굴지 말자.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지. 아직은 괜찮다. 만회할 수 있을 거다.
3.
내가 듣는 과목들 중에 가장 점수가 좋은 것은 역시 심리학 과목과 미술이다. 역사는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학생들에게 자기 수업에서 완벽하게 하길 바라는 전공 오타쿠 교수”한테 걸리는 바람에 현재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반의 절반 이상은 C 이하를 받고 재수강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_-
여하튼, 미술은 같은 반에 미술 전공인 학생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내가 반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라는 말까지 들어서 잔뜩 우쭐해져 있다. ;
오늘은 학교 벽에 붙어있는 학생 작품 전시관에 우리 반의 작품이 14개가 들어갔는데, 그 중 4개인가 5개가 내 작품이었다. 기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우쭐하기도 하고. 미술 과제를 하는 동안에는 귀찮다고 어렵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몰입해서 정신 없이 작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아아, 난 역시 이런 것들이 좋다, 이런 것들이 없었으면 난 진작에 죽어버렸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 때의 내게 그림과 글이 없었다면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분명히, 미쳐버렸을 거다.
좀 더 많은 걸 그리고 싶다. 좀 더 많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 좀 더 많은 작품들을 보고 싶다. 좀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 좋은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
도자기 만드는 수업도 듣고 싶고, 유화랑 수채화 수업도 듣고 싶다. 인체 그리기 수업도, 천 염색 수업도, 조각 수업도, 사진 수업도, 보석 세공 수업도 듣고 싶다. 음악 수업은 언제나 가슴 설레인다. 연주실을 지나칠 때면 항상 두근거린다. 다시 한번, 건반을 만져보고 싶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배우고 싶은 것들을 실컷 배워볼 텐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리해서 미술 과목들을 스케쥴에 집어넣었고, 그 때문에 다른 수업들을 해나가는 게 조금 더 힘들어졌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에는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이게 없었다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지금의 내게는 미술과 심리학 수업을 듣는 게 인생의 크나큰 낙이다. 미술 시간에 듣는 칭찬들과 심리학 시간에 배우는 갖가지 정신병들과 뇌의 구조와 역할과 호르몬의 작용은 정말이지 재미있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 그것도 즐겁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다.
4.
난 아주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겠다고 굳게 결심했었고, 폭력과 억압과 강제와 온갖 트라우마가 난무하는 집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은 채, 혼자서 고양이를 키우며 평온하게 살고 싶다고,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간절히 바랐었다. 무엇을 생각하던 모든 것의 원점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독립”으로 귀결됐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미술이나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그런 불안정하고 수입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했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갖고 싶은 것들은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이 재능들은, 원하는 것들을 이 손으로 얻어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산타 클로스가 존재한다고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주제에, 이제 와서 이렇게 꿈꾸고 바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싸워줄 아군이 있는 지금은 더욱 마음이 든든하다.
# by | 2008/05/21 09:47 | Daily Story... | 트랙백 | 덧글(7)













